인간의 근본적 욕구
정통 유대인 부모의 하나뿐인 아들이었던 에리히 프롬은 1900년 3월 2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프롬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대단히 보수적이고 놀랄 만큼 신경증적이었다고 묘사했다. 종교적 분위기에서 성장한 것이 그의 심리학 연구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프롬은 집단행동에 대한 이해에 관심을 가졌으며 겨우 14세 때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칼 마르크스의 책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922년에 프롬은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하이델베르크 대학을 졸업, 정신분석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나치가 집권하자, 프롬은 독일을 탈출해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 대학에서 그는 카렌 호나이와 에이브러햄 매슬로를 만나 함께 연구 활동을 펼쳤다. 프롬은 20세기 정신분석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통하고 있으며 인본주의 심리학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쳤다. 칼 융과 알프레드 아들러, 카렌 호나이와 에릭 에릭슨처럼, 프롬도 '신 프로이트 학파'의 일원이었다. 이 집단은 프로이트의 주장 중 상당 부분에 동의했으나 특별한 부분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었으며 자신들의 믿음을 프로이트의 이론과 통합시켰다. 프롬의 이론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칼 마르크스의 사상을 통합시켰다. 프로이트가 무의식과 생물학을 강조했다면, 마르크스는 사회와 경제 체제의 역할을 강조했다. 프롬은 개인의 결실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생물학적 요인들이 큰 역할을 할 때도 있고, 사회적 요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때도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프롬은 자신이 믿는 것은 인간의 진정한 본질, 즉 자유라는 이론을 제시했다. 프롬은 정치 심리학과 인간의 성격, 사랑에 관한 연구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1944년에 프롬은 멕시코로 이주했으며 거기서 멕시코 정신 분석 연구소를 설립해 1976년까지 소장으로 활동했다. 에리히 프롬은 1980년 3월 18일 스위스 무랄토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신 프로이트 학파의 견해 차이
신 프로이트 학파의 심리학자들은 자신의 이론들을 개발했다. 그런데도, 그들도 프로이트의 연구가 안고 있는 것과 비슷한 문제들을 공유했다. 그 문제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프로이트의 부정적인 인간관
• 개인의 성격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부분적으로는 어린 시절 경험에 좌우된다는 프로이트의 믿음
• 프로이트가 사회적 문화적 영향이 성격과 행동에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점
자유
자유란 것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멀리하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프롬은 주장했다. 그런데 사람이 자유로워지는 것을 피하려는 이유는 뭘까? 프롬은 개인의 자유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외적 권위로부터의 자유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는 통념에 동의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또한 사람의 내면에는 자유를 제한하고 억제하는 심리적 작용이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개인이 진정한 형식의 자유를 성취하기 위해선, 그 사람이 먼저 이 심리적 작용을 극복해야 한다. 프롬에 따르면, 자유는 어떤 목적이나 의미를 위해서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또 당신 자신의 자아 외에는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고립과 공포, 소외, 그리고 비천한 존재라는 느낌을 낳을 수 있다. 심각한 경우에는 진정한 형태의 자유가 정신병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프롬은 최종적으로 자유란 것은 심리적으로 갖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을 피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중요한 방법을 3가지 소개했다.
1. 권위주의: 사람은 자신의 권력을 종속시키거나 권위자가 됨으로써 권위적인 사회의 일부가 될 것이다. 프롬은 이런 방법의 극단적인 예가 사디즘과 마조히즘이지만 그보다 덜 극단적인 유형의 권위주의는 선생과 학생 사이를 비롯해 곳곳에서 목격된다고 주장했다.
2. 파괴성: 사람이 자기 자신의 고통에 대한 반응으로 주변의 무엇인가를 파괴하는 성향을 말한다. 굴욕과 잔인성, 범죄가 나오는 것이 바로 이 파괴성이다. 파괴성은 또한 내면으로 향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자기 파괴로 알려진 그것이다. 가장 명백한 예가 '자살'이다. 프로이트는 이 자기 파괴가 다른 사람들에게로 돌려진 결과가 바로 파괴성이라고 믿었지만, 프롬은 그 반대가 진실이라고 믿었다. 즉 파괴성이 좌절한 결과가 바로 자기 파괴라는 믿음이었다.
3. 자동적 동조: 계급 조직적 성격이 덜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대중문화 속에 숨는 능력을 갖고 있다. 언어든 의상이든 생각이든 불문하고 군중 속으로 사라짐으로써, 사람은 더 이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고 따라서 자신의 자유를 인정할 필요도 없게 된다.
사람이 자신의 자유를 피하기 위해 선택하는 길은 그 사람이 성장해 온 가족의 유형에 좌우된다. 프롬에 따르면, 건강하고 생산적인 가족은 부모가 자식들에게 추론에 대해 가르칠 때 사랑의 분위기를 가꾸는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여기는 가족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아이들은 책임을 지는 법을 배우고 자신의 자유를 확인하면서 성장할 것이다. 그러나 비생산적인 가족도 존재한다. 프롬에 따르면 회피의 행동을 촉진하는 가족들이 비생산적인 가족이다.
1. 공생적 가족: 이런 유형의 가족 안에서는 가족 구성원들의 성격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의 성격을 삼켜버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이의 성격이 단지 부모의 희망 사항만을 반영하거나, 아이가 부모를 지나치게 지배한 나머지 부모가 아이를 돌보는 일에만 빠져 지내는 경우이다.
2. 위축적 가족: 이런 유형의 가족 안에서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매우 높은 기준에 맞춰 살기를 기대하고 아이들에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것을 요구한다. 이런 종류의 양육은 또한 의례적인 처벌을 포함하고, 이 처벌에는 의례히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말이 따른다. 이런 유형의 가족 안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형식의 처벌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서적인 것이다. 죄의식을 건드리고 애착을 거둬들이는 처벌이다.
그러나 양육은 이 방정식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프롬은 믿었다. 그는 사람들이 명령을 따르는 데 아주 익숙한 나머지 자신이 명령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가운데 명령에 복종한다고 주장했다. 또 사회의 규칙들이 무의식에 각인된 상태에서 우리가 진정한 자유를 획득하지 못하도록 잡아당긴다고 프롬은 주장했다. 그는 이런 것을 '사회적 무의식'이라고 불렀다.
프롬의 인간적 욕구
프롬은 '인간적 욕구'와 '동물적 욕구'를 구분한다. 프롬에 따르면, 동물적 욕구는 생리적 욕구이고, 인간적 욕구는 사람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대답을 찾고 또 자연의 세계와 재결합하려는 욕망을 표현하도록 돕는 욕구이다. 프롬의 개념에는 인간적 욕구가 8가지 있다.
1. 관계성: 다른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욕구를 말한다.
2. 초월성: 사람은 제 뜻과 상관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창조나 파괴를 통해서 자신의 본성을 초월하고자 하는 욕구를 갖고 있다.
3. 정착성: 이 세상에 뿌리를 내려 편안함을 느끼고 싶어 하는 욕구를 말한다. 만약 이 정착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엄마와 아이의 끈 그 너머까지 성장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이 생산적으로 성취되지 못한다면, 아이는 엄마의 보호를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4. 정체감: 프롬은 사람이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성을 느낄 필요가 있다고 믿었다. 이 정체성에 대한 욕망이 지나치게 강하면 오히려 동조하도록 만든다. 그러면 개성 강한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동일한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5. 방향의 틀: 사람은 세상을 이해하고 또 그 세상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를 배울 필요가 있다. 사람은 종교와 과학, 개인적 철학 혹은 세상을 보는 관점을 제시하는 모든 것들에서 구원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다.
6. 흥분과 자극: 단순히 반응만 하지 않고 어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7. 통합: 자연 세계와 인간 세계가 하나 되는 느낌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를 말한다.
8. 유효성: 마치 당신이 성공한 것처럼 느끼고 싶은 욕구를 말한다.
프롬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는 인본주의 심리학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인간성을 하나의 모순으로 보았다. 프롬에 따르면 생명은 자연의 일부가 되고 싶은 욕구임과 동시에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은 욕구였다. 또 프롬에게는 자유가 사람들이 실제로 피하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그 무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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