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장애라는 현상과 그 원인은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관점으로 볼 수 있다. 우리의 모든 '심리적인' 현상 밑에는 생물학적인 현상이 깔려 있다.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고 말할 때 관여하는 생리적인 기제들이 당연히 '이상 행동'에도 관여한다. 심리 치료가 이상 행동의 원인으로 '과거의 갈등'이나 '현재의 스트레스'를 꼽는다고 해서 신경계의 이상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접근할 때 치료의 주안점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라고 보면 된다.
생물학적, 의학적인 관점에서는 신경계의 기능 이상을 교정함으로써 이상 행동을 치료하려는 접근법을 취한다.
어떤 사람들은 어떤 심리 장애의 원인이 생물학적인 이상이라고 생물학적인 치료가 최선의 방책이라고 말하는데, 이 주장은 큰 논리적 오류를 가지고 있다. 가령, 심리 치료를 통해 행동과 생각을 변화시켜도 뇌의 기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 예로, 항우울제인 프라작(Prazac)을 투여하면 뇌의 글루코스 대사가 촉진되어 증상의 개선을 가져온다. 백스터 등과 슈워츠 등의 연구를 보면 약물을 투여하지 않고 행동치료를 받은 환자의 뇌에서도 동일한 변화가 목격되었다. 더 나아가 '인지 행동 치료'가 우울증 환자들의 수면 중 뇌파 형태를 다시 정상으로 복구시킬 수 있었으며, 항우울제는 그런 치료 효과가 없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한 약물 치료만 하기보다는 심리 치료를 병행하면 치료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연구 보고가 상당하다.
심한 우울증, 양극성 장애, 조현병 등의 증상을 감소시키기 위해 심리 치료만 시도한다면 환자와 치료자 간 상호 작용과 의사소통을 전제로 하는 전형적인 심리 치료 기법이 정석대로 적용되지 않아 효과를 보지 못하거나 효과를 보더라도 충분하지 않게 된다. 이때 생물 의학적인 방법을 전적으로 동원해야 한다. 약물을 투여하고 때에 따라서는 병원에 입원시키기도 한다.
생물 의학적인 치료들은 약물 치료, 전기 충격 요법, 수술 이 세 가지로 나뉜다.
약물 치료
앞에서 언급했듯 생물 의학적인 치료법 중에선 약물 치료가 흔하게 쓰인다. 약물 치료는 정신 약물학에 기반하여 환자의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법이다. 정신 약물학에서는 우리의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 전달 물질이 많아지거나 적어질 때 감정이나 언행의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연구한다.
이상 행동을 치료하기 위해 처방하는 약물은 사용 목적에 따라 항정신성 약물, 항우울제, 항조증제, 항불안제 등으로 부른다.
조현병과 같은 심한 장애뿐만 아니라 불안과 우울 같은 증세에도 약물을 처방하는데, 이들 약물에는 어떤 것이 있고 그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알아보자.
심리적 장애에 흔히 처방되는 약물
(1) 항정신성 약물
항정신성 약물이 개발되기 전 조현병 환자들은 직업을 가지거나 학교에 다니는 일상 활동을 하지 못하고 현실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여 정신병원의 폐쇄병동에 수용되거나 길거리를 배회하였다. 그러다가 1950년대 중반 항정신성 약물이 개발되면서 환자들은 빠른 시일 내에 퇴원했고 사회 복귀도 가능해졌다. 클로르프로마진(chlorpromazine), 할로페리돌(haloperidol), 클로자핀(clozapine), 리스페리돈(risperidone), 올란자핀 (olanzapine), 세로켈(quetiapine), 지프라사돈(ziprasadone), 아빌리파이(Aripiprazole), 인베가(paliperidone) 등이 조현병과 기타 정신질환에 처방된다. 항정신성 약물들은 신경 전달 물질 중 하나인 도파민의 수용기를 막거나 둔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도파민 활동을 억제하는 세로토닌의 활동 수준을 높이는 약물도 있다.
이러한 약물들이 망상, 환각, 사고 장애, 별것 아닌 일에 대한 과잉 반응 등의 양성 증상은 완화하지만, 조현병의 다른 증상, 즉 음성증상이라 불리는 대인관계의 철퇴, 감정적 둔마 현상, 사회 기술의 결핍 등에는 효과를 나타내지 못한다. 지금까지 개발된 항정신성 약물 중에 제일 효과적인 클로자릴도 조현병 환자의 적응을 돕기는 하지만 조현병을 완치시키지는 못한다. 단지 주요 증상을 조절하고 감소시켜 환자가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할 뿐이며, 일평생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 즉, 현재 조현병은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이 거의 평생 조절하고 관리해야 하는 질병이다. 그렇기에 사회 기술훈련 등을 포함한 심리사회 재활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약물로 평균 입원 기간이 옛날보다 단축되었고 전체 환자의 2/3 정도가 효과를 본다. 그러나 약물의 효과를 보더라도 조현병 환자들은 부작용에 시달려서 복용을 중지하기도 한다. 약 1/4의 복용자에게서 만발성 운동장애(tardive dyskinesia)라는 신경학적 장애가 발견되는데, 이는 손이 떨리는 등의 불수의근 경련 등이 특징이다. 좀 더 나중에 개발된 항정신성 약물들은 이러한 위험이 비교적 적다. 드물게 악성 항정신성 약물 증후군(neuroleptic malignantsyndrome)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열이 나고 섬망을 경험하고, 극히 드물지만 죽음에 이르기도 하는 그야말로 '악성' 증상이다. 특히 클로자의 경우, 골수에 작용하여 적혈구와 백혈구, 혈소판 등의 생성에 영향을 미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다른 항정신성 약물을 충분히 사용하여도 효과가 없다는 것이 증명된 후에만 사용하는 2차 약제로 지정해 놓았으며, 반드시 정기적인 혈액 검사를 받으면서 사용하게 되어 있다.
(2) 항우울제
주로 우울, 불안, 공포증, 강박충동 장애의 치료 목적으로 쓰이며 노르에피네프린이나 세로토닌 같은 모노아민계 신경전달물질의 수준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페넬진(Phenelzine) 같은 모노아민계 산화 억제제(monoamine oxidase inhibitor)는 노르에피네프린과 세로토닌을 불발하는 효소를 막거나 억제하여 이들 신경 전달 물질의 수준을 높이지만, 우리나라처럼 발효 음식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에게는 고혈압 위기가 발생할 수 있기에 자주 사용되지 않는다. 아미트리프틸린(Amitriptyline) 같은 삼환계 항우울제(tricyclic antidepressant)는 노르에피네프린과 세로토닌의 재흡수를 방해함으로써 이들 신경전달물질의 수준을 높인다. 삼환계 약물들은 효과에 견줘 부작용이 많아서 임상 실제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렉사프로(Escitalopram) 같은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 SSRI)는 삼환계 항우울제와 같은 원리로 작용하지만 특별히 세로토닌만 타깃으로 한다. 오늘날 가장 많이 사용되는 항우울제이며, 상대적으로 부작용이 적고 효과적이다. 그 외에 선택적 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차단제인 이펙서(Venlafaxine), 심발타(Duloxetine)와 알파2 효능제인 레메론(Mirtazapine), 웰부트린(Bupropion) 등이 사용되고 있는데 각기의 효능과 부작용이 있기에 경험이 많은 베테랑 임상의의 처방이 필요하다.
항우울제는 투여를 시작한 뒤 약 2주가 지난 후부터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며 2~6개월 정도 복용하면 대부분 증상이 가라앉는다. 항우울제는 중독성이 없지만 입이 마르고 두통, 변비, 메스꺼움, 동요, 소화 장애, 체중 증가 등의 부작용이 일부 있을 수 있다.
(3) 진정제
발륨(Valium)이나 아티반(Lorazepam) 같은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GABA(GammaAminobutyric Acid)의 활동을 증가시켜서 항불안 효과를 나타낸다. 요즘에는 자낙스(alprazolam)나 리보트릴(clonopine) 등의 고강도 벤조다이아제핀이 개발되어 사용되는데, 우울 증상으로 인한 불면증이나 불안, 공황발작을 호소하는 환자들에게 가장 자주 처방되는 약물이다. 그러나 이들이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자체를 없애 주지는 않는다. 응급상황에서 잠시 평온한 마음을 가지게 돕기만 할 뿐, 장기적인 치료 목적으로 쓰지 않는다. 요즘은 벤조계통이 아닌 항불안제로 부스파(Buspirone)를 처방하기도 하지만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
진정제의 가장 큰 문제는 의존성이다. 신체적 의존성과 심리적 의존성 모두가 문제가 되는데, 신체적 의존성은 그리 크지 않지만 심리적 의존성은 매우 심각하여 치료진이 약을 끊을 수 있는 인지 행동 치료 등의 대안적 방법을 제공해 주지 않으면 수년 이상 약물에 의존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진정제를 복용하는 사람 중에는 약물을 남용하고 갑자기 투여를 중단하면 금단현상과 내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자낙스나 클로나제괌은 처방받은 대로 정확하게 복용하지 않으면 한동안 발생하지 않았던 공황발작이 한꺼번에 몰려오기도 한다.
(4) 리튬
리튬(lithium carbonate)은 양극성 장애를 관리하는 데 사용된다. 조증을 그냥 내버려 두면 평균 3~4개월 동안 지속되는 데 비해 리튬을 사용하면 조증의 상태가 5~10일로 줄어든다.
양극성 장애 환자가 적정량의 리튬을 지속해서 복용하면 기분이 차분히 가라앉은 상태를 지속시켜 주고 조증 및 우울증의 발생 가능성을 감소시켜 준다. 리튬이 어떤 기제를 통해 양극성 장애를 조절해 주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대뇌 신경 세포막 사이의 이온의 흐름을 안정되게 만들어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체적으로 노르에피네프린의 수준을 조절하거나 뇌가 흥분성 신경 전달 물질인 글루타메이트(glutamate)에 의해 과하게 자극되는 것을 막아준다. 리튬은 적정량만 복용해야 하며 혈중 약물 농도를 자주 체크해야 하는데, 이는 리튬이 너무 적으면 치료 효과가 없고 너무 많으면 신경계에 독성을 나타내어 경련, 뇌 손상, 불규칙한 심장박동 등과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리튬보다는 항경련제들이 항조증 치료제로 많이 처방되고 있는데, 이는 소위 뇌 신경계의 '킨들링 현상'으로 경련과 양극성을 유사현상으로 간주하는 이론 때문이다. 대표적인 약물로는 태그래톨(Carbamazepine), 데파코트(Divalproex sodium), 라믹탈(Lamotrigine) 등이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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