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은 언어의 구조보다는 언어가 정보로써 이해되고 산출되는 과정에 관심을 둔다. 언어가 처리되는 동안에 어떤 지식이나 제약들이 작용하여 언어의 이해와 산출이 일어나는지를 밝히고자 하였다. 언어의 처리는 언어가 인지 체계에 입력되면서 발생하는 심적 변화의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언어학에서는 언어의 구조를 음운(혹은 철자), 통사, 의미 수준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에 상응하는 언어 단위는 음절 혹은 단어, 문장, 글말의 담화 수준이 된다. 이들 수준의 언어가 어떻게 인지 체계에서 처리되는지를 밝히는 것이 심리학, 특히 언어심리학에서의 주요 관심사다. 이 장에서는 단어나 형태소 수준의 어휘 처리와 여러 문장으로 구성된 담화 글의 처리에 대해서 살펴본다.
1) 어휘 처리
모든 언어에서 언어의 의미는 단어 수준에서 완전하게 나타난다. 심리학에서는 단어라는 용어보다는 어휘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한다. 어휘(lexical)는 단어가 기억에 표상된 상태를 의미한다. 단어가 언어적 단위이면, 어휘는 심적 단위이다. 물리적 단어가 심적 단어로 전환되어 기억에 표상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제약이 영향을 미치게 된다. 첫째, 단어의 빈도다. 사용 빈도가 높은 단어가 낮은 단어에 비해서 단어의 지각이 빠르며 기억도 잘 된다. 둘째, 단어 우월성 효과(word superiority effect)다. 단어로 제시되면 단어에 포함된 낱자나 음절의 지각이나 기억이 촉진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WORK 단어에서 K를 재인하는 속도가 K만 제시하고 K에 대한 재인을 하는 속도보다 빠르다는 것이다. 셋째, 글자의 친숙성이 지각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KBS와 kbs를 비교해 보고, sbs와 SBS를 비교해보면, 전자들이 후자들보다 지각이 빠르다는 것이다. 단어의 길이가 짧은 단어가 긴 단어보다 이해가 빠르며, 발음이 쉬운 단어가 어려운 단어보다 이해가 빠르며, 단어의 의미가 단순한 단어가 복잡한 단어는 단독으로 제시되는 경우보다는 문장이나 글 속에 제시되는 경우가 더욱 빈번하다. 단어 우월성 효과에서 단어가 낱자의 지각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다른 단어, 문장 및 글말의 맥락(context)이 어휘 처리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단어 간의 의미적 관계도 어휘 처리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사과를 본 다음의 과일에 대한 반응시간이 인형을 본 다음의 과일에 대한 반응시간과 다르다는 것이다. 이를 의미 점화 효과(semantic priming effect)라 한다. 의미 점화 효과는 단어 제시 맥락이 어휘 처리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며, 어휘 정보가 기억에 저장된 구조에 대한 정보도 제공한다.
언어의 단위 정보, 즉 낱자(음운과 철자), 단어, 문장, 글을 정보 단위로 본다면 맥락 효과는 언어의 단위 간의 처리방식에 대한 주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낱자의 처리에 단어가 영향을 미치고, 단어의 처리에 문장의 구조가 영향을 미치고, 문장 처리에 글말의 맥락이 영향을 미친다면 언어의 처리가 상호작용적 과정 또는 하향적인 과정으로 일어난다는 증거가 된다, 상위의 언어 처리가 일어나는 동안에는 하위의 언어 처리는 쉬워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설을 읽는 동안에 개별 단어의 낱자나 철자를 구체적으로 탐색하면서 읽는가? 모국어의 경우는 거의 암묵적이며, 자동으로 읽혀 간다.
2) 글말 이해
언어는 단어나 문장의 기본 단위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복잡한 사고나 대화는 많은 단어와 문장을 복합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 텍스트, 신문, 웹페이지, 소설, 만화 등은 단순히 단어나 문장을 넘어서 단락이나 텍스트의 단위를 사용하게 된다. 하나 이상의 문장으로 구성된 글말을 담화(discourse) 혹은 텍스트(text)라고 한다. 이러한 복잡한 언어는 어떻게 이해되는가? 글말 이해나 기억의 보편적 현상은 그 담화의 모든 단어나 문장을 제시된 그대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글말의 이해는 문장과 문장의 연결 의미를 파악하는 과정이 우선이다. 말이 복잡해지면 모든 글말의 단어나 문장을 기억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많은 문장이나 단어는 사라지게 되고 소수의 단어나 문장만이 기억에 남게 된다. 그 단어나 문장은 글말에 있었던 그대로가 아니라 다른 형상으로 기억된다. 글말의 의미적 내용을 압축하여 전체적 의미를 대표하는 명제를 만들어 낸다. 이 명제는 글에서 의미를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이들 명제의 위계적 조합이 글의 주제(theme)인 것이다.
문장 1: 등산을 하던 영희는 나무에 걸려 넘어졌다.
문장 2: 그녀는 오른쪽 무릎을 심하게 다쳤다.
예를 들어, 앞에 제시한 두 문장을 읽으면서 글말 이해가 일어나는 과정을 살펴보자. 각 문장은 단어로 구성되며, 문장의 문법에 따라 통사적 처리를 하게 된다. 사람들을 개별 문장을 이해하는 동안에 두 문장의 전체적 의미를 파악하는 과정을 수행한다. 문장 1과 문장 2는 '영희'라는 주인공이 두 가지 행위를 하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영희-그녀는'의 연결 관계와 '넘어졌다 - 다쳤다'의 연결 관계는 두 문장의 이해를 촉진시킨다. 전자의 연결 관계는 참조 관계라고 하며, 담화 이해의 맥락에서는 참조 처리 (reference process)라 한다. 후자의 연결 관계는 인과관계라고 하며, 담화 이해의 맥락에서는 인과 처리(causal process)라고 한다.
참조 처리는 먼저 제시된 문장의 행위자(영희)가 계속 제시됨으로써 문장은 다르지만 동일한 행위자로 연결하게 한다. 문장 2의 경우는 대명사라는 대용어를 사용하여 이전 문장의 행위자를 나타내고 있다. 두 문장의 주인공이 동일하다는 단서는 두 문장을 연결하여 통합하는 과정을 쉽게 만들어 준다. 인과 처리는 먼저 제시된 문장의 행위 동사와 다음 문장의 행위 동사의 연결을 의미한다. '넘어졌다'와 다쳤다'는 '넘어졌기 때문에 다쳤다.'라는 인과적 연결이 가능하다. 두 행위 간의 인과적 연결은 처리자의 인과 지식이 작용하며, 글의 주제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
그러나 담화 글에 제시된 연결 단서만으로는 글말의 이해를 잘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 다음의 글을 읽어 보자.
[ 창호지가 잡지보다는 더 좋으며, 길거리보다는 해변이나 들판이 좋다. (중략) 어린아이도 즐길 수 있는 놀이다. 그리고 일단 성공하면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중략) 만약, 일부분이 떨어져 나가면 다시는 할 수 없다. ]
이 글은 어려운 단어나 복잡한 문장으로 구성되지는 않았지만 전체 담화가 어떤 주제인지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연날리기'라는 제목을 제시하였다면 어떤 변화가 나타날까? 한 연구에서 주제 제목 글을 읽기 전에 제시하는 조건이 글을 읽은 다음 제시하거나 제목을 제시하지 않는 조건에 비해서 글에 대한 기억이 많이 이루어졌다. 이 연구는 이해자 지식 적용이 글 이해에 얼마나 중요한 작용을 하는지를 보여 주었다. 단지 이해자가 연날리기 지식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담화 글을 성공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글의 이해는 단어나 문장의 이해나 의미를 넘어서 문장 간의 연결 이해, 요약에 의한 주제 파악, 이해자의 지식 적용 등의 조화가 잘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계의 조화를 글의 응집성(coherence)이라 한다. 어쩌면 언어, 글의 이해는 응집적인 표상을 기억에 형성하는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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