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화 본능
사람은 끊임없이 범주화하고 일반화하는 성향이 있다. 무의식 중에 나오는 성향이지, 편견이 있다거나 깨우치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 사고가 제 기능을 하려면 범주화는 필수다. 범주화는 생각의 틀을 잡는 작업이다. 우리가 모든 주제, 모든 시나리오 하나하나를 정말로 유일하다고 본다면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무슨 말로 묘사하겠는가.
일반화 본능은 이 책에서 언급한 다른 모든 본능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필요하고 유용하지만, 때때로 이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왜곡할 수 있다. 실제로는 매우 다른 사물이나 사람 또는 국가를 같은 범주로 잘못 묶을 수 있고, 같은 범주에 속한 모든 대상을 다 비슷하다고 단정 지을 수도 있다. 그리고 아마도 가장 큰 문제는 소수를 가지고, 심지어 매우 드문 단 하나의 사례를 가지고 그것이 속한 범주 전체를 속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언론은 이런 본능의 친구다. 엉터리 일반화와 고정관념은 언론이 일종의 속기처럼 사용하는 것으로, 빠르고 쉽게 소통하는 방법이다. 요즘 뉴스에 기재되는 전원생활, 중산층, 조직원 등이 그러한 예에 속한다.
많은 사람이 인정한 문제 있는 일반화를 ‘고정관념’이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인종과 성별을 이야기할 때 고정관념이 끼어든다. 이때 아주 중요한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데, 엉터리 일반화로 생기는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그릇된 일반화는 무언가를 이해할 때 우리의 생각을 방해한다.
간극 본능은 세상을 '우리'와 '저들'로 나누고, 일반화 본능은 ‘우리’가 ‘저들’을 다 똑같은 사람으로 생각하게 한다.
About Percentages
오늘날 전 세계 1세 아동 중 어떤 질병이든 예방접종을 받은 비율은 몇 퍼센트일까?
□ A: 20%
□ B: 50%
□ C: 80%
여러 분야 전문가의 무지를 비교하려면 평범한 여론조사 회사로는 한계가 있다. 그런 회사는 대기업이나 정부 기관에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강연을 시작하면서 청중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까닭이다. 나는 지난 5년 동안 108회 강연에서 총 1만 2,596명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때 최악의 결과가 나온 문제는 사실 이 문제였다. 다음 도표는 12개 전문가 집단을 오답률 순서로 정리한 것이다.
최악의 결과는 전 세계 투자 담당 매니저들이 세계 10대 은행 중 한 곳의 본점에 모인 연례 회동 때 도출되었다. 나는 세계 10대 은행 중 세 곳을 방문했는데, 회의실에 모인 71명의 은행 간부 중 무려 85%가 전 세계에서 소수의 아이만 예방접종을 받는다는 오답을 내놓았다.
백신은 공장에서 아이 팔뚝에 닿기까지 차갑게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냉장 시설을 갖춘 컨테이너에 넣어 전 세계 항구로 운반하고 거기서 다시 냉장 시설을 갖춘 트럭에 싣는다. 각 지역의 병원과 진료소는 트럭에 실려서 온 백신을 다시 냉장 시설에 보관한다. 이러한 운송 경로를 ‘저온 유통 cool chain’이라고 한다. 저온 유통이 가능해지려면 우선 운송, 전기, 교육, 보건 의료 같은 기초적 기반 시설을 모두 갖춰야 한다. 공장을 새로 건설할 때도 이와 똑같은 기반 시설이 필요하다. 88%의 아이가 예방접종을 받는데도 주요 투자자들이 20%의 아이만 예방접종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면, 거대한 투자 기회를 놓침으로써 임무를 수월하게 수행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
머릿속에 '저들'이라는 범주를 만들고 그 범주에 인류 다수를 집어넣으면 이런 식의 엉터리 답이 나온다. 특정 범주의 삶을 상상할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뉴스에 나오는 가장 생생하고 충격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는가? 뉴스에 나오는 극도의 결핍을 보다 보면 인류 다수에 대해 고정관념을 갖게 된다.
여성이 임신하면 대략 2년 정도는 생리하지 않는다. 생리대 제조업체에는 우울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들은 세계적으로 저출생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기뻐해야 한다. 남성과 동등하게 사회 활동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는 소식도 마찬가지다. 이런 발전은 생리하는 여성 수십억 인구 사이에서 지난 여러 해 동안 생리대 시장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세계적 생리대 제조업체에서 개최한 국제회의에 참석한 나는 서양 제조업체 대부분이 이런 점을 완전히 간과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들은 작은 범주에 매몰된 채 편협한 사고방식으로 새로운 욕구와 새로운 고객을 찾으려 했다. "비키니를 입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더 얇은 패드를 내놓으면 어떨까? 라이크라 스판덱스를 입을 때 사용하는 보이지 않는 패드는? 복장, 상황, 스포츠 각각의 경우에 맞는 패드를 만들면 어떨까? 등산용 특수 패드도 좋지!" 모든 패드가 워낙 작아서 하루에도 몇 번씩 갈아야 한다면 제조업체에는 이상적일 것이다. 그러나 부유한 소비자 시장이 대부분 그렇듯 기본 욕구는 진작 충족되었고, 생산자는 가뜩이나 작은 분야에서 새로운 수요를 만드느라 헛된 싸움을 할 뿐이다.
반면 생리를 하는 중산층의 약 20억의 여성은 생리대를 선택할 여지가 거의 없다. 이들은 라이크라 스판덱스를 입지 않으며, 울트라 슬림 패드에 돈을 쓰지도 않는다. 이들은 밖에서 일할 때 종일 갈지 않고 쓸 수 있는, 믿음직스럽고 저렴한 패드를 원한다. 그런 제품을 찾을 수 있다면 아마도 평생 한 가지 상표만 고집하고 주변 여성들에게도 같은 상품을 추천할 것이다.
이런 논리는 다른 많은 소비재에 두루 적용할 수 있다. 나는 업계 지도자를 상대로 수백 회 강연하면서 이러한 점을 누차 강조했다. 세계 인구 다수에서 삶의 단계가 천천히 올라가고 있다. 세계 거의 모든 사람이 소비자가 되고 있다. 세계 인구 대다수가 물건을 전혀 살 수 없을 정도로 여전히 가난하다고 오해하는 사람은 세계 역사상 가장 큰 경제적 기회를 놓친 채 유럽 대도시에 사는 부유층에게 특수 생리대를 파는 데에 마케팅 비용을 쓸 것이다. 사업 계획을 전략적으로 세우는 사람이라면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미래의 고객을 물색해야 한다.
만만치 않은 현실
일상을 살아가려면 일반화 본능이 필요하고, 때로는 그 본능 덕에 역겨운 것을 먹어야 하는 상황을 모면할 수도 있다. 우리에겐 늘 범주가 필요하다. 단, 우리가 생각하는 여러 가지 단순한 범주 중 어떤 것이 오해의 소지가 있는지 알고, 그 범주를 좀 더 나은 것으로 대체해야 한다.
이를 위한 최고의 방법의 하나는 여행이다. 그곳에서 대학 수업을 들어보고, 병원을 가보고, 그 지역 가정에 묵으면서 그곳 생활을 직접 체험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학생들은 대개 스웨덴의 특권층 젊은이로 좋은 일을 하고 싶어 하지만 세상을 잘 알지 못한다. 여행을 해봤다는 학생도 대개 생태 관광 여행사 옆에 있는 카페에서 카푸치노를 마시는 정도지, 그곳 가정이나 주민과 직접 어울리는 일은 절대 없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 가서 여행객을 상대로 장사하는 카페뿐만 아니라 현실을 들여다본다면, 내가 살던 곳에서 평범한 것을 기준으로 삼은 일반화가 무용지물 혹은 오히려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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